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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26 18:44

나리 나리 개나리


<나리 나리 개나리>

-기형도


누이여

또다시 은비늘 더미를 일으켜세우며

시간이 빠르게 이동하였다

어느 날의 잔잔한 어둠이

이파리 하나 피우지 못한 너의 생애를

소리 없이 꺾어 갔던 그 투명한

기억을 향하여 봄이 왔다


살아 있는 나는 세월을 모른다

네가 가져간 시간과 버리고 간 

시간들의 얽힌 영토 속에서

한 뼘의 폭풍도 없이 나는 고요했다

다만 햇덩이 이글거리는 들판을

맨발로 산보할 때

어김없이 시간은 솟구치며 떨어져

이슬 턴 풀잎새로 엉겅퀴 바늘을

살라주었다


봄은 살아 있지 않은 것을 묻지 않는다

떠다니는 내 기억의 얼음장마다

부르지 않아도 뜨거운 안개가 쌓일 뿐이다


잠글 수 없는 것이 어디 시간뿐이랴

아아, 하나의 작은 죽음이 얼마나 큰 죽음을 거느리는가

나리 나리 개나리

네가 두드릴 곳 하나 없는 거리

봄은 또다시 접혔던 꽃술을 펴고

찬물로 눈을 헹구며 유령처럼 나는 꽃을 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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