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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울산 동구의회 징비록(懲毖錄) - 최상건 기자

울산 동구의회 징비록(懲毖錄)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며 동시에 지어올린 궁궐인 ‘경복궁’. 경복(景福)이란 중국 시가집인 <시경(詩經)> 주아편(周雅篇)에서 나온 말로 ‘큰 복’이란 의미다. 그 경복궁의 중심에는 국가의 중대 행사와 왕이 집무를 보던 근정전이 자리 잡고 있다. 경복궁을 비롯해 주요 전각의 이름을 붙인 사람은 태조를 도와 조선의 기틀을 마련한 삼봉 정도전.

태조는 삼봉에게 “근정전 이름의 뜻이 무엇이오?”라고 묻자 그는 “무릇 왕은 해가 뜰 무렵부터 중천을 지나 해가 질 때까지…밥 먹을 시간조차 아끼면서… 부지런히(勤)정사(政)를 돌봐야 한다는 뜻에서 지었습니다.”라고 위정자의 마음가짐에 대해 아뢰었다.

이름에 대한 이야기가 또 하나 있다.

1592년 임진왜란부터 1597년 정유재란의 이야기를 담은 책인 징비록(懲毖錄)이 그것이다. 징비록은 서애 류성룡이 전쟁 배경과 전투 상황, 주변국과의 외교관계, 전쟁 이후 백성들의 삶 등 7년 동안 이어진 왜(일본)와의 전쟁 과정을 총체적으로 기록한 책으로 국보 제132호로 지정돼있다.

징비(懲毖)란 <시경> 소비편(小毖篇)에 ‘지난 일을 경계해 앞으로는 후환이 생기지 않도록 대비한다(予其懲而毖後患)’는 구절에서 따온 말이다.

류성룡은 과거와 현재를 거울삼아 미래를 맞이하자는 의미에서 전쟁 과정을 소상히 기록한 책의 제목을 징비라 지었을 것이다. 

울산 동구도 전쟁을 치르고 있다. 밖으로는 국제 경기 침체로 인해 조선업이 직격탄을 맞으면서 현대중공업이 있는 동구가 불황의 늪에 빠졌다. 안으로는 이 어려움을 함께 극복해야 할 주민들의 대의기관인 동구의회가 자리에 눈이 멀어 다툼을 벌이고 있다. 

‘근정’ 해야 할 위정자들이 제 할 일을 안 하고 있고 전쟁이 나자 뭉칠 생각은 없고 자리싸움만 이어지고 있다. 류성룡은 우리들의 실수를 후손들이 배우고 되풀이 하지 않았으면 하는 뜻에서 역사를 기록한 책을 지었지만 여전히 ‘징비’하지 못하고 있다.

현대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인 기자 중 한 사람으로서 동(東, 동녘 동)구의회가 동(?, 어리석을 동)구의회란 이름으로 역사에 기록되지 않도록 간절히 지켜본다.

최상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