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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2013.08.26 23:10

일련의 디스사태. 놀랍지는 않다.





1392년, 아직 찬 기운이 가시지 않은 3월. 이성계가 낙마하여 부상을 입는다. 이성계의 건국야망에 반대한 정몽주에게는 희소식이었다. 고려 왕조의 존속을 강력히 주장하는 정몽주는 새 국가를 창건하려는 이성계의 상태는 물론 그 측근과 창건세력들의 상황을 살피기 위해 병문안을 가게된다. 그 곳에서 정몽주는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인 이방원과 마주하게 된다. 





        

(출처 - 네이버)



술상을 두고 마주한 두 정치적 갈등세력의 실세 중의 실세인 정몽주와 이방원.

그들은 자신들의 견해를 짧은 시조로 나누었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서 백 년까지 누리리라

                                       - '하여가'


시작은 이방원이었다. 정몽주의 의중을 살펴보기 위함이었다.

정몽주는 즉시 화답했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 '단심가'


이방원은 정몽주의 뜻을 단 번에 알아차렸음에 틀림없다. 

이 날, 정몽주는 이방원이 보낸 자객에게 선죽교에서 암살당한다.



                                                           ( '선죽교' -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 作)

                           



최근 한국대중가요계가 소란스럽다. 이른바 디스사태가 그것이다. '디스'란 비난, 결례등을 뜻하는 disrespect의 줄임말로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헐뜯는 것을 말한다. 연예인 특성상 이들의 언행은 대중들에게 전파될 수 밖에 없기에 연일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과거 어떤 이해관계나 오해 등을 비롯해 연예인들 사이에 주고받는 설전이 화제가 되기는 했었지만 이번 사태는 사뭇 모양새가 다르다.





         VS         


 


랩퍼 이센스는 다이나믹 듀오와 그 소속사를 비난하는 곡을 자신의 SNS에 게재했다. 팬들은 물론 힙합에 관심이 적었던 대중들과 비난의 당사자인 다이나믹 듀오도 반응했다. 대중들은 이센스의 디스에 대한 대응으로 개코(다이나믹 듀오)의 디스곡을 기다렸다. 몇 시간 후, 대응곡이 나왔고 대중들의 반응은 더 커져갔다. 현재, 이들과 관계된 많은 랩퍼들이 자신들이 담고있었던 이야기들을 폭풍처럼 쏟아내고 있다. 



대중문화를 소비하는 소비자로서 이런 광경은 당혹스럽다. 왜냐하면 연예인, 특히 가수들은 수익 대부분을 음원판매와 방송출연으로 올리는 한국시장 특성상, 수익성도 없을뿐더러 오히려 자신의 이미지를 실추 시킬 수 있는 이런 행위들을 언뜻 이해하긴 힘들다.(물론 인지도상승의 효과를 기대할 순 있다.) 이 사태가 진정되고 마무리가 되더라도 대중들의 머릿속에 새겨진 그들의 이미지는 더 이상 대중적 수요를 발생시킬 수 없을지도 모른다.





                                                     ( Compton 출신 힙합그룹 N.W.Z )


한편, 랩과 힙합을 좋아하는 팬들의 경우 더할나위없는 흥미진진한 사건들임에 틀림없다. 아름다운 선율과 친근한 가사로 쓰여진 힙합을 비난하는 같은 힙합전사들이 있고 서로가 서로를 할퀴고 싸우는 이것이 힙합정신이며 죽어버린 한국 힙합문화와 시장에 부활의 촉매제라는 것이 디스전을 관전하는 팬들의 생각이다. 힙합장르가 우리보다 더 발달한 미국의 경우 '힙합전사들'끼리의 디스로 강력사건까지 번지기 까지하니 힙합이란 장르안에서도 셀 수 없이 많은 계파와 견해가 존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려의 파멸과 조선의 건국이야기에서 빼 놓을 수 없는 '하여가'와 '단심가'는 이방원과 정몽주, 두 사람의 정치적 견해차이가 결국 정몽주의 죽음으로 귀결되었음을 말해주는 슬프고도 참혹한 역사의 노래다. 600년도 더 된 시조가 지금으로 본다면 두 사람의 의견충돌로, 고상한 시로써 탄생해 서로 디스아닌 디스를 한 것이다. 다 이해할테니 포기하십시오하는 이방원과 그렇게는 못하겠다는 정몽주. 작금의 랩퍼들이 펼치는 신명나는 육두문자의 '시조'는 상대방을 포용하거나 용서하는 대신 책임전가와 책임회피, 변명의 위태로운 줄타기가 아닌가 걱정된다.









ps)아래는 개인 견해입니다. 이걸로 라임을 만들어 곡을 하나 만들어 보고 싶네요. 디스하진 마세요 ㅜ


의미없는 가사는 대중들에게 매력적이지 않다. 사실 그들의 이야기보다 우리네 근처에서 벌어지는 부조리들이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가사를 이해할 수 없는건 라임을 살리기 위해 아무 의미없는 단어의 선택들은 뒤로 하더라도 당사자들끼리가 아니면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이 그 이유다. 사람의 행위엔 분명 이유가 있다. 그들의 음악관과 다른 아티스트에게 자신들이 하는 음악적 형식을 빌어 과격하게 표현하는 것이 본질이라면 딱 거기까지 하면 되었다. 배신과 금전문제, 평소 가슴속에 담아두었던 응어리들을 푸는 것이라면 차라리 입장표명 또는 법적인 절차를 거쳐 해결하는 것이 좀 더 신사적이지 않을까? (하지만 힙합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디스할 것이다. 분명!)


나는 힙합을 모른다.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는 그네들끼리는 별 것아닌 담소이겠지만 소비하는 대중은 알아먹지 못 할 소리들을 들으며 한 편으론 가사내용 해석판을 찾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굳이 디스곡을 왜 공개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들만의 이야기, 그들만의 이해관계라면 손편지라도 쓸 살가운 사이는 아니라도 자신이 녹음한 음원을 이메일로 보낼 수 있진 않을까? 

대중들에게 공개한다는 것,

대중들에게 알리고 싶은 것, 

대중들아 날 좀 봐달라는 것, 

과거의 나를 잊고 새로워진 나를 받아들이라는 일종의 협, 악날한 겁, 차가운 결, 엎드린 포.


어쨌든 이것이 힙합문화의 특성이라면 비판은 하되 비난해선 안된다. 오히려 이들이 가진 욕구불만상태를 대중이 파악하면서 이들이 펼치는 이들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이들이 뿜어내는 소리처럼 소비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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