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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2014.08.04 00:38

시인 '이상'이 소설가 '최정희'에게 보낸 편지

<본문>


지금 편지를 받았으나 어쩐지 당신이 내게 준 글이라고는 잘 믿어지지 않는 것이 슬픕니다.

당신이 내게 이러한 것을 경험케 한 것이 벌써 두 번째입니다.

그 한 번이 내 시골에 있던 때 입니다.


이런 말 하면 웃을지 모르나 그간 당신은 내게 커다란 고독과 참을 수 없는 쓸쓸함을 준 사람입니다. 나는 다시금 잘 알 수가 없어지고 이젠 당신이 이상하게 미워지려고까지 합니다.


혹 나는 당신 앞에 지나친 신경질이었는지는 모르나

아무튼 점점 당신이 멀어지고 있단 것을 어느날 나는 확실히 알았었고....

그래서 나는 돌아오는 걸음이 말할 수 없이 허전하고 외로웠습니다.

그야말로 모연한 시욋길을 혼자 걸으면서 나는 별 이유도 까닭도 없이 자꾸 눈물이 쏟아지려고 해서 죽을 뻔 했습니다.


집에 오는 길로 나는 당신에게 긴 편지를 썼습니다. 물론 어린애 같은, 당신 보면 웃을 편지입니다.


"정희야, 나는 네 앞에서 결코 현명한 벗은 못됐었다. 그러나 우리는 즐거웠었다. 내 이제 너와 더불어 즐거웠던 순간을 무덤 속에 가도 잊을 순 없다. 하지만 너는 나처럼 어리석진 않았다. 물론 이러한 너를 나는 나무라지도 미워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이제 네가 따르려는 것 앞에서 네가 복되고 밝길 거울 같기를 빌지도 모른다. 정희야, 나는 이제 너를 떠나는 슬픔을, 너를 잊을 수 없어 얼마든지 참으려고 한다. 하지만 정희야, 이건 언제라도 좋다. 네가 백발일 때도 좋고 내일이래도 좋다. 만일 네 '마음'이 흐리고 어리석은 마음이 아니라 네 별보다도 더 또렷하고 하늘보다도 더 높은 네 아름다운 마음이 행여 날 찾거든 혹시 그러한 날이 오거든 너는 부디 내게로 와다오-. 

나는 진정 네가 좋다.

 왠일인지 모르겠다. 네 적은 입이 좋고 목덜미가 좋고 볼다구니도 좋다. 나는 이후 남은 세월을 정희야 너를 위해, 네가 다시 오기 위해, 저 야공(夜空)[각주:1]의 별을 바라보듯 잠잠히 살아가련다...."


하는 어리석은 수작이었으나 나는 이것을 당신께 보내지 않았습니다.

당신 앞엔 나보다도 기가 차게 현명한 벗이 허다히 있을 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단지 나도 당신처럼 약아보려고 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내 고향은 역시 어리석었든지 내가 글을 쓰겠다면 무척 좋아하든 당신이- 우리 글을 쓰고 서로 즐기고 언제까지나 떠나지 말자고 어린애처럼 속삭이던 기억이 내 마음을 오래도록 언짢게 하는 것을 어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정말 나는 당신을 위해- 아니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다고 해서 쓰기로 한 셈이니까요-.


당신이 날 만나고 싶다고 했으니 만나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이제 내 맘도 무한히 흩어져 당신 있는 곳엔 잘 가지지가 않습니다.


금년 마지막날 오후 다섯시에 후루사토(故鄕)[각주:2]라는 집에서 만나기로 합시다.


회답주시기 바랍니다. 李箱.







1935년 시인 이상이 소설가 최정희에게 보낸 편지.

이 편지는 최정희씨의 딸인 소설가 김채원씨가 보관하고 있던 편지 중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이 편지는 또 하나의 편지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저는 임의로 '부치지 않은 편지'라 하겠습니다.


편지 서두에 적힌 내용으로 보아 최정희로부터 편지를 받고 쓴 답신으로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이전에도 고백했지만 모두 퇴짜를 맞은 것으로 보입니다.

차인 것에 대한 속내와 분노, 슬픔을 말하면서 그 기분으로 이런 편지글을 썼다고 말합니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넌 아무 잘못없어. 모두 다 못난 내 탓이야. 너의 행복을 빌게. 그런데 나는 정말 슬프다. 

그래도 참아 볼게. 그리고 돌아와라. 언제든지 돌아와라. 나는 정말 네가 좋다.'


하지만 그것은 부치지 않았습니다 라고 말하는 李箱. 

그리고 뒤에 이어지는 내용의 분위기는 담담합니다. 

열번 찍어 안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하지만 2번 실패 후 이상은 그냥 '쿨'하게 인정합니다.

이상의 표현을 빌리자면 '어리석은 수작'이었던 부치지 않은 편지의 

내용과 분위기가 사뭇 다르니까요. 

최정희를 미워하지 않고 진정 행복하길 빌겠다고 한 李箱이, 

너와 함께한 시간들이 가슴속에 남아 있어 슬픔을 달랠길 없다는 李箱이, 

난 언제든지 널 기다린다했던 李箱이 

이러한 생각과 마음들이 자신의 기분을 언짢게 한다고 한 것이죠. 



내가 너한텐 이것밖에 되지않느냐? 

나는 너에 대한 마음과 생각이 이렇게 깊고 넓은데... 



이상은 부치지 않은 편지를

당신처럼 약아보이려고 쓴 글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으로 짐작하건데 최정희는 자유로운 모던-우먼이라고 생각됩니다.

(이상과 교제하던 당시 이혼녀였으니까 'Girl'은 아니지 않을까??)

요즘으로 말하면 '팜므-파탈'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당신이 날 만나자고 했으니 만나드리겠다'  라는 것으로 보아 최정희가 앞전 편지에서 

만나자는 제의를 보낸 것으로 생각됩니다. 李箱도 거기에 응답하죠. 

李箱은 최정희화의 담판을 내기 전 

이제 더 이상 구차하게 매달리지 않겠다라는 자세를 이 편지로 미리 전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제 내 마음도 무한히'흩어져 당신에게 가지 않는다' 

'부치지 않은 편지'에서 말한 감정들은 모두 다 구라다!!



李箱은 구겨진 자존심을 조금 피겠다는 심정으로 

일종의 작고 소심한 복수를 했다고 생각됩니다. 

이른바 '선빵'을 친 것이죠. 


어두운 시절 한국 문학계를 이끌었던 젊은 예술가들의 사랑.

이들의 작품 만큼이나 삶도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감성을 자극하게 합니다.


↓ 조금 독특한 나만의 상상해석!! 


내 멋대로 생각






  1. 야공 ; 夜空 밤하늘 [본문으로]
  2. 후루사토;ふるさと; 故郷 고향 [본문으로]
  3. 야공 ; 夜空 밤하늘 [본문으로]
  4. 후루사토;ふるさと; 故郷 고향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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