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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



...


불나비가 달려들어 불을 끈다. 불나비는 죽었든지 화상을 입었으리라.

그러나 불나비라는 놈은 사는 법을 아는 놈이다.

불을 보면 뛰어 들 줄도 알고 평상에 초조히 불을 찾아 다닐 줄 아는 정열의 생물이니 말이다.


그러나 여기 어디 불을 찾으려는 정열이 있으며 뛰어들 불이 있느냐? 없다.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내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암흑은 암흑인 이상, 이 방 좁은 것이나 우주에 꼭 찬 것이나 분량상 차이가 없으리라.

나는 이 대소없는 암흑 가운데 누워서 숨 쉴것도 어루 만질 것도 아무것도 없다.

다만 어디까지가야 끝이 날지 모르는 내일, 그것이 또 창 밖에 등대하고 있는 것을 느끼면서

오들오들 떨고 있을 뿐이다.



이상, <권태>中